3세, 6세 자매를 키우는 싱글맘입니다. 2년 전 남편과 이혼한 후 두 아이를 위해 정말 열심히 살았고 아빠 몫까지 사랑을 쏟았다고 자부합니다. 아이들에게는 아빠가 돈 벌러 먼 데 갔다고 말해뒀어요.
그런데 큰아이가 좀 자라니 아빠의 빈자리를 부쩍 크게 느끼는 것 같습니다. 가끔 아빠와 통화를 하게 되면 큰아이는 "엄마도 돈을 버니 아빠도 돈 조금만 벌고 빨리 집에 오라"고 조릅니다. 평소에도 아빠가 보고 싶다는 얘기를 많이 하고요. 결혼 생활을 하며 너무 상처를 많이 받은 터라 전남편과 재결합할 생각은 추호도 없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아이들에게 아빠의 부재를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아이들이 커갈수록 고민이 깊어집니다.
이혼은 분명 아이들에게 상처를 줍니다. 하지만 아이들이 성장하며 받는 상처는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무척 다양하죠. 불의의 사고와 재난, 질병과 이별은 물론이고 자신이 갖지 못한 것과 이루지 못한 많은 것들로 인해 아이들은 상처를 입습니다. 부모의 이혼으로 인한 상처는 그중 하나에 불과하죠. 상처는 인간에게 고통을 주지만 상처를 극복하면서 인간은 성숙해집니다. 우리가 갖는 개성이란 삶의 과정에서 받은 다양한 상처를 스스로 견디고 이겨내면서 만들어낸 모습이죠. 상처 없이 아이를 키우고 싶은 것이 부모의 마음이지만 상처 없이 자란다는 것은 가능하지도 않고 바람직하지도 않습니다.
저는 아이에게 닥친 위기와 상처가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위기의 순간에, 상처로 고통 받는 순간에 누군가 아이 곁에 머무르며 함께하지 못할 때 문제가 생긴다고 생각합니다. 이혼을 하지 않으면 더 좋겠지만, 이혼을 한다고 해서 아이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기는 것은 아닙니다. 부모의 이혼으로 받게 될 크고 작은 상처의 순간에 부모가 곁에 있어줄 수 있다면, 아이의 이야기를 듣고 아이와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다면 아이는 상처를 삶의 일부로, 성숙의 계기로 만들어갈 것입니다.
이혼 가정에 관한 다양한 연구를 봐도, 이혼 가정의 아이가 이혼이라는 사건만으로 특별한 어려움을 겪지는 않습니다. 이혼 후 부모의 삶이 더 바빠지면서 부모와 함께할 시간이 적어지는 것, 부모 자신이 겪는 심리적인 문제, 사회경제적인 어려움이 아이들 삶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것이죠. 반면 이혼의 긍정적인 면도 있습니다. 이혼에 이르게 된 부부 관계는 대부분 심한 갈등과 다툼을 동반합니다. 이 과정에서 아이들의 불안감은 극도로 높아지고 심리적인 성숙은 방해를 받습니다. 이혼으로 결론이 나면 부부의 싸움은 자연스럽게 종결되고 이는 아이들의 정서 발달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칩니다. 연구를 보면 이혼을 하지 않고 계속 심각한 다툼이 지속되는 가정의 아이들보다 이혼한 가정의 아이들이 정서 상태가 양호합니다.
이혼한 부모를 둔 아이들이 갖는 심리적인 문제 중 가장 흔한 것은 잘못된 책임감과 버림받았다는 감정입니다. 아이들은 부모의 이혼을 자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곤 합니다. 부모가 실수로 지나가듯 던진 이야기, 예를 들어 "네가 자꾸 그러니까 아빠랑 엄마가 맨날 싸우게 되지"와 같은 말들이 아이의 잘못된 인식을 만드는 경우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말을 부모가 하지 않아도 아이들은 아무 근거도 없이 부모의 이혼을 자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아이들의 이런 잘못된 죄책감은 아이들 특유의 자기중심적 사고에 기반하고 있습니다. 자기 주변에서 벌어지는 모든 문제는 자기에게서 비롯된다고 생각하는 것이죠. 어른들이 보기에는 황당한 생각이지만 아이들은 진심으로 이렇게 믿습니다. 그 결과, 죄책감과 불안에 시달리죠. 부모가 여러 번 분명하게 아니라고 확인해주지 않으면 어른이 될 때까지 지속적으로 죄책감에 시달리는 경우도 많습니다.
버림받았다는 감정도 이혼 가정의 아이들이 흔히 갖는 감정입니다. 특히 이혼 후 한쪽 또는 양쪽 부모와 지속적으로 만나지 못할 경우 버림받았다는 느낌은 강해집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최근에는 상황이 나아지고 있지만 이혼 후 아이를 키우지 않는 부모가 연락하지 않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문화가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버림받았다는 감정에 오랫동안 힘들어하는 아이들이 많습니다.
아이들은 자기를 사랑하던 부모가 어느 날 갑자기 떠나 자기에게 더 이상 연락하지 않는 것을 받아들이기 어렵습니다. 어른들은 이유를 알지만 아이에게는 제대로 알려주지 않죠. 그래서 아이는 혼자서 상황을 설명하는 이야기를 자기 멋대로 지어냅니다. 그리고 그 이야기의 대부분은 부모가 자신을 버렸다는 내용으로 이뤄져 있습니다. 자기에게 부족한 점이 있어서, 자기가 나쁜 아이여서 부모가 자기를 버렸다고 생각하죠. 결국 아이는 평생을 자신에 대한 열등감을 갖고 살아가게 됩니다.
이혼을 해도 부모는 부모입니다. 부모는 아이와 지속적으로 연락하고 만나야 합니다. 아이가 버림받았다는 생각을 갖지 않게 하고, 부모는 "예전과 다름없이 너를 사랑한다"고 말해줘야 합니다. 그래야 아이가 불필요한 열등감이나 죄책감에 시달리지 않고 자랄 수 있습니다. "엄마 아빠는 서로 사이가 나빠 헤어졌지만 그것은 엄마 아빠 둘만의 문제일 뿐, 너와 나 사이, 부모와 자녀의 사이는 변하지 않는다"고 말해줘야 합니다.
물론 아이는 조릅니다. 남들처럼 같이 살면 안 되겠냐고. 어떤 아이는 자기가 더 잘할 테니 부모가 같이 살라고 조르기도 해서 부모의 마음을 아프게 합니다. 그런 상황이 견디기 어려워 아이를 보지 않으려는 부모도 있습니다. 자신을 만나면 아이가 더 힘들어하니 아이를 안 보는 것이 낫지 않겠냐고 말하기도 하죠. 하지만 아이에게 슬픔을 주었다면, 그 슬픔의 시간을 함께하는 것이 부모로서의 도리입니다.
웃고 즐길 때 같이하는 것은 쉽습니다. 슬프고 괴로운 순간을 같이하기가 어렵죠. 아이가 슬프다면 그 슬픔의 시간을 같이해야 합니다. 아이는 어쩔 수 없다는 것을 흐르는 시간 속에서 받아들이게 될 것입니다. 아이는 빨리 극복하지 못합니다. 그렇게 간단한 일이 아니니까요. 하지만 시간을 두고 제대로 극복한다면 어떤 해로운 상처도 아이에게 남지 않습니다. 죄책감과 열등감에 시달리지 않고 세상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우리 사회의 경우 아직도 부모가 이혼했다는 말을 하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주변의 시선을 의식해야 하니까요. 사회적으로 이혼이 급증해 거의 세 가정 당 한 가정이 이혼을 경험하지만 주변을 둘러보면 그런 가정이 눈에 띄지 않습니다. 어지간하면 숨기기 때문이죠. 아이 입장에서 보면 부모가 숨긴다는 것은 곧 부끄러운 일입니다. 자신은 부끄러운 무언가를 가진 존재가 되는 셈이죠.
저는 부모부터 이혼에 당당해지기를 권하고 싶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실수할 수 있습니다. 살다 보니 서로 안 맞아 헤어지는 것은 실수도 아닙니다. 우리는 그렇게 완벽한 존재가 아니니까요. 늘 싸우면서도 제대로 헤어지지 못하고 서로에게, 또 아이들에게까지 심한 상처를 주는 것이 부끄러운 일이지 현명하게 이혼 과정을 밟았다면 부끄러운 일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아이들에게도 이에 대해 말해야 합니다. 담담하게 엄마와 아빠는 여러 노력을 했지만 서로가 맞지 않아 따로 살기로 했다고, 그래야 서로 상처를 더 이상 주지 않을 수 있을 것 같아 결정했다고 말해줘야 합니다. 대신 엄마 아빠 모두 너를 책임지고, 이혼 후에도 지속적으로 만날 것이라고 약속하면 됩니다.
이번 사연의 경우에도 아이가 너무 어려 제대로 정보를 알려주지 않았나 봅니다. 그저 아빠가 사정이 있어 집에 못 오는 것이라고 이야기하셨겠죠. 이는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이혼에 대해 처음부터 아이들에게 터놓고 얘기하는 편이 낫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다양한 연구가 있어 왔습니다. 그 연구 결과들은 아이가 어려도 이야기해주는 게 좋다고 일관되게 이야기합니다. 가끔 홧김에 이혼은 했지만 곧 다시 재혼하는 부부도 있는데, 그 경우라면 상황이 다르겠죠. 부부가 서로 관계에 대한 기대를 완전히 끊고 각자의 미래를 만들기로 결심했다면 그때는 아이에게 말해야 합니다.
많은 이혼 부모가 자녀에게 아빠 혹은 엄마의 부재를 거짓말로 둘러댑니다. 외국에 갔다, 출장을 갔다는 식으로 이야기하죠. 아이들은 직관적으로 어른들이 뭔가를 감추려 한다는 것을 느낍니다. 가족 내에 감추고 숨기는 묘한 분위기가 공기처럼 머뭅니다. 아이들은 이 분위기에 답답함을 느껴 엉뚱한 행동을 저지르기도 하고, 정서적으로 위축되어 자연스럽고 아이다운 행동을 못 하기도 합니다.
아이들이 부모의 말을 사실로 믿는 경우라고 하더라도 견디기 어려운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아무리 돈을 벌려고 외국에 갔다 해도 이렇게 자신을 보러 오지 않을 수 있을까 생각하죠. 혹시 자기가 보고 싶지 않은 게 아닐까 생각이 들어 상처를 입습니다. 앞서 말했듯이 아이들은 이혼 그 자체가 아니라 자신이 버려졌다는 사실에 더 크게 상처 받습니다.
만 4세, 우리 나이로 5,6세까지는 부모가 이혼한 경우 일시적으로 퇴행을 보일 수 있습니다. 더 어린아이처럼 행동하는 것이죠. 그런데 그런 퇴행도 지나가는 한 과정입니다. 아이가 이런 모습을 보인다고 죄책감을 갖거나 힘들어하지 마세요. 그저 아이와 좀 더 즐거운 시간을 많이 갖고, 아이와의 약속을 확실히 지키려고 노력하면 됩니다.
아이가 퇴행 행동을 보이면 부모들은 당황하고 죄책감을 느끼기 쉽습니다. 그리고 죄책감 때문에 자신이 힘들어하느라 이 중요한 시기에 아이와의 시간을 즐기지 못합니다. 결국 상황을 더 악화시키죠. 부모가 중심을 잘 잡아야 합니다. 이미 벌어진 일은 돌이켜 생각하지 마십시오. 수습에 집중해야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습니다.
아이가 만 5세 이상이라면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고 부모가 아이와의 약속을 잘 지키며 차분히 새로운 상황에 적응할 경우 별다른 문제가 생기지 않습니다. 물론 아이는 부모의 이혼을 알게 되면 당황하고 혼란스러워할 겁니다. 시간이 지나면 많이 슬퍼하겠죠. 이때 부모는 아이가 느끼는 감정이 당연한 것이라고 인정해줘야 합니다. 그 후 "네가 슬프고 괴롭고 많이 힘들 수 있어. 엄마 아빠가 다시 같이 살기를 바라는 마음도 잘 알아. 하지만 엄마 아빠는 따로 떨어져서 살 수밖에 없게 됐어. 그래도 아빠 엄마가 너의 부모라는 사실엔 변함이 없고, 너를 언제나 지켜줄 거야"라고 말해주세요. 아이가 이 말을 당장은 받아들이지 못하더라도 반복해서 확인시켜주는 것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또한 엄마 아빠의 이혼에 대해 궁금한 게 생기면 언제든 물어보라고 이야기해주세요. 아이들은 혼자서 온갖 상상을 하고 자기 나름의 이야기를 만듭니다. 그러고는 그 이야기를 기정사실로 믿어버리죠. 이 과정에서 자기가 잘못해서 부모가 이혼했다는 죄책감을 갖게 되면 곤란합니다. 부모가 아무리 안심을 시켜도 아이는 상당 기간 버림받는 두려움에 시달립니다. 그래서 불안 증상을 보이죠. 부모가 서로를 버리듯 자기도 버릴 것이라는 현실적인 염려 때문입니다. 사랑해서 같이 살았는데 결국 헤어졌다면, 나를 사랑한다고 해도 역시 헤어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죠. 이 염려를 빨리 없앨 방법은 없습니다. 하지만 아이와 함께하는 시간이 쌓일수록 걱정은 자연스럽게 사라집니다. 시간이야말로 불안을 이기는 가장 강력한 치료약이니까요.
마지막으로 이혼한 부모들에게 우리보다 먼저 이혼이 보편화된 서양의 연구에 대해 다시 한 번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이혼이 아이들의 미래에 꼭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은 아닙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도 이혼 가정 출신이죠. 이혼 가정의 자녀가 정서적으로 혼란을 일으키는 것은 부모의 이혼을 인식하고 난 뒤 2,3년 정도입니다. 그 기간이 지나면 제자리를 찾는 경우가 많습니다. 학업 성적이나 자존감이 떨어지지만 이 역시 4~6년이면 원상회복됩니다. 장기적으로는 거의 차이가 없습니다.
이혼은 이제 현실이 되었습니다. 아이는 처음에는 힘들어하겠죠. 하지만 부모가 심리적으로 안정되어 있고, 자신을 예전과 다름없이 사랑하고 아껴준다는 것을 느낀다면 아이들은 차츰 안정을 찾게 됩니다. 아이의 불안은 대부분 부모의 불안에서 옵니다. 이미 이혼이 이뤄졌다면 이제는 더 이상 죄책감을 갖지 마세요. 지금 이 순간, 아이와 행복을 만들어가며 최선을 다하는 것이 아이를 위한 가장 좋은 길입니다.
아이가 아빠를 만나지 않았으면 하는 어머님의 마음에는 분명 이유가 있겠죠. 아이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주리라 생각해서일 것입니다. 아빠가 아이를 신체적, 정서적으로 학대해왔거나 아이에 대한 사랑이 거의 없다면 그렇게 해도 괜찮습니다. 그러나 누구나 동의할 만한 명백한 이유 없이 단지 엄마의 감정이나 걱정 때문에 아이가 아빠를 만나지 못하게 한다면 그것은 아이에게 해로운 일입니다.
엄마가 보기에는 부족한 사람이더라도 아이에게는 아빠입니다. 아이는 아빠에 대해 부모 한쪽의 편견을 통해 바라보기보다 자기 스스로 경험하고 판단할 권리가 있습니다. 그러니 가급적이면 아이에게 전 배우자에 대해 부정적으로 말하지 마세요. 아이 입장에서 보면 한쪽 부모의 부정적인 언급이 '너는 절반은 나쁜 피를 갖고 있다'고 말하는 것처럼 들릴 뿐입니다. 자기를 결함을 가진 존재로 생각하게 되죠. 그렇다고 전 배우자에 대해 억지로 지어내서 긍정적으로 말할 필요는 없습니다. 좋은 말이 생각나지 않으면 아예 말하지 않는 편이 낫습니다.
아빠에게 여러 가지 문제가 있더라도 아이들은 아빠를 만나는 것이 좋습니다. 자기 존재에 대한 안정감을 얻을 수 있을 뿐 아니라 그 시간을 통해 아빠의 한계도 알게 되고 마침내 엄마를 이해할 수 있게 됩니다. 아이들의 판단력을 믿어야 합니다. 안 좋은 것을 배우면 어떨까 걱정하지만 아이들은 다양한 문화를 경험하며 올바른 것을 선택할 능력이 있습니다. 아빠가 아니라도 안 좋은 문화는 얼마든지 접하게 되고, 안 좋은 행동도 얼마든지 보게 됩니다. 기껏해야 아빠를 통해 조금 빨리 경험하게 될 뿐이죠. 물론 아빠가 정서적, 신체적 학대에 해당하는 행동을 한다면 상황은 달라집니다. 적극적으로 만나지 못하게 해야겠죠.
아이를 키우는 엄마는 아이가 아빠를 만나게 하고 싶은데 아빠가 피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럴 때는 엄마가 나서서 상대의 정확한 의중을 알아봐야 합니다. 감정을 배제한 채 아빠를 만나 "당신에게 별 감정 없고 양육 문제로 부담을 줄 생각도 없다. 다만 아이가 원해서 만나게 하고 싶은데 협조할 생각이 있는지" 물어보세요. 아이를 규칙적으로 만나 아빠로서의 사랑을 주면 좋겠지만 만약 그럴 의향이 없다면 아이에게 감정을 정리하라고 말하겠다고 하세요.
그렇게 해서 상대의 결정에 따랐다면 엄마의 할 일은 다한 것입니다. 아이를 만나는 것을 아빠가 거부하면 담담한 태도로, 있는 그대로, 그 이야기를 아이에게 하면 됩니다. 그러고는 아이를 꼭 안아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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